어떤 것을 붙잡았을 때 거기에 유쾌함이 있는가?아니면 불쾌함이 있는가?만약 유쾌함이 있다면 그 유쾌함을 또 붙잡겠는가?만약 불쾌함이 있다면 그 불쾌함을 붙잡겠는가?우리의 수행을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사용할 만한 견해도 있다.예를 들어,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거나,비슷하다거나,어리석다거나 하는 견해는 모두 그릇된 견해이다.그런 생각이 들 수는 있지만 지혜로 이해해야 한다.그런 생각 역시 나타났다 소멸한다.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다른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옳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생각도 옳지 않다.바른 견해란 이 모든 것을 뀀뚫는 것이다.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 자만이 생겨난다.자만이 있지만 깨닫지 못한다.다른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면 존경심이나 겸손함이 우러나지 않는다.또한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때는 좌절하면서 자신이 열등하거나 불운을 타고 났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이렇게 우리는 여전히 오온에 집착하게 된다.이 모든 것이 존재이고 생성이다.그것이 우리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그것 말고 또 한 가지가 있다.유쾌한 체험을 하면 행복을 느끼고 불쾌한 체험을 하면 고통을 느낀다.당신은 좋아함과 싫어함을 똑같은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가?이러한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해 보라.일상에서 듣기 좋은 말이나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기분이 달라지거나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가?이것 역시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자기 자신을 아는 것,그것이 바로 자신의 증인이다.욕망에 따라 판단하지 말라.욕망은 자신의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생각하도록 우리를 부추긴다.우리는 신중해야 한다.수행을 평가할 때는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겠지만 바른 견해는 욕망이 아닌 진리를 따른다.우리는 선과 악을 모두 알아야 하고 그 두 가지를 모두 아는 순간 두 가지를 다 버려야 한다.놓아 버리지 못했을 때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 있고 여전히 존재하고 여전히 소유한다.존재한다는 것은 여전히 무언가 남아 있고 형성과 태어남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따라서 붓다께선 오직 자기 자신을 평가하되,아무리 선하고 아무리 악해도 남을 평가하지 말라고 하셨다.붓다께선 진리는 이런 것이라고 말하며 방향만 가리켜 주실 뿐이다.당신의 마음은 그 진리와 같은가,같지 않은가?어떤 승려가 다른 승려의 물건을 가져가자 "자넨 내 물건을 훔쳤어!"라고 그를 비난한다.물건을 가져간 승려는 "나는 훔치지 않았네,그저 가져온 것 뿐이야."라고 말한다.그들은 다른 승려에게 판단을 하라고 한다.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할까?물건을 가져간 승려는 청문회에 출석하라는 요구를 받을 수도 있다.그는 "예,그것을 ㄱ져간 것은 사실이지만 훔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혹은 훔치기는 했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참으로 곤란한 일이다.그 말을 믿을 수 없다면 그 일을 행한 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밖에 없다.그러나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숨 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냥 덮어 버릴 수는 없다.이런 것들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스스로 감추고 스스로 드러내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모든 일이 저절로 일어난다.마음은 본래 그런 것이다.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추측하거나 짐작하지 말라.무명이 남아 있는 한 그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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