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속세이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든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은 모두 속세이다.속세는 모두 버리라.속세는 본래 그런 것이다.그런 것들이 의식을 점령하면 마음은 탁해지고 아무것도 볼 수 없다.마음속에 무엇이 떠오르든 그저 "이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이건 무상하고,불만족스럽고,자아가 아니야."라고 말하라.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고통을 일으킬 뿐이다,그러나 빨리,혹은 지금 당장 죽고 싶다는 생각도 옳은 것은 아니다.그 역시 고통이 아니겠는가?모든 외적인 조건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그저 저마다의 이치를 따르는 것뿐이다.육체의 이치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젊은 아가씨들이 입술을 바르고 손톱을 기르는 것처럼 조금 예쁘게 꾸미거나 한동안 매혹적이고 기분 좋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그러나 나이가 들면 결국 모두 한 배를 타게 된다.이것이 육체의 길이며 다른 길은 없다.그러나 마음만은 얼마든지 개선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나무와 벽돌이 있으면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다.그러나 붓다께선 그런 집은 진짜 집이 아니며 오직 겉보기에만 그렇다고 하셨다.그것은 속세의 집이며 속세의 방식을 따르는 집이다.진짜 집은 마음의 평화이다.속세의 외형적인 집은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평화롭지는 않다.이런저런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그래서 진짜 집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그런 집은 우리의 외관일 뿐 머지않아 그 집을 버려야 한다.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다.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이다.우리는 집을 자아,나,혹은 나의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그 집은 세상의 집일 뿐이다.우리의 몸은 탄생을 거쳐 노화와 병듦이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친다.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다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것은 오리가 닭이 되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그것이 불가능함을 안다면 즉 ,오리는 오리일 수밖에 없고 닭은 닭일 수밖에 없음을 안다면 용기를 낼 수 있다.육체가 영원하기를 아무리 간절하게 바라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붓다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생성되었다가 소멸하는 것이 그들의 이치이니 모든 조건 지워진 것은 무상하다.태어났기에 소멸해야 하는 것,그러한 조건을 잠재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