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배웠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볏단 위에서 잠을 자는 개처럼 무지한 것이다.정말 부끄러운 일 아닌가?벼가 있지만 그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가?껍데기가 낱알을 싸고 있어서 개가 먹지 못한다.수행을 하지 못하고 초월을 보지 못한다.끊임없이 현상에 얽매인다.현상에 얽매이다 보면 고통은 피할 수 없고 형성과 생로병사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우리를 가로 막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것이다.법을 공부하되 참의미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볏단 위에 앉아 있는 개와 같다.아무리 열심히 법을 공부해도 수행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다.달콤한 열매를 생각해 보라.열매가 아무리 달콤해도 따서 먹어 보지 않으면 맛을 알 수 없다.아무도 맛을 보지 못했을 때도 열매는 항상 달콤했다.단지 아무도 알지 못했을 뿐이다.붓다의 법도 마찬가지이다.법이 진리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아니다.아무리 맛있는 열매라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왜 고통을 움켜쥐는가?누구도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고통을 일부러 찾아다니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고통의 원인을 만들어 낸다.행복을 원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많은 고통을 만들어 낸다.이 정도만 알아도 고통을 멈추기에는 충분하다.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고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그들은 그릇된 견해를 갖고 있으면서 그것이 그릇된 견해임을 깨닫지 못한다.무슨 말을 하고,무엇을 믿고,무엇을 행하든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모두 그릇된 견해이다.그릇된 견해가 없으면 고통이나 행복,그 어떤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모든 것을 물이 흐르듯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둑을 쌓을 필요 없이 그저 흐름을 따르도록 내버려 둔다.법의 흐름도 마찬가지이다.그러나 무명에 빠진 마음은 그릇된 견해로 법의 흐름을 거스르려 한다.다른 사람에게서 그릇된 견해를 보면 얼른 돌아서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릇된 견해는 보지 못한다.그것이야말로 들여다 볼 가치가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엄청난 고통에 휩싸인 채 윤회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질병이나 고통이 오면 오직 그것을 없앨 궁리만 한다.최대한 빨리 멈추고 싶어한다.진리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육체는 결국 무너진다.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는 진리이다.법을 깨닫기 위한 수행이야말로 가장 훌륭하다.붓다께서 왜 이런 완전함의 경지를 개발하셨을까?우리가 법을 보고,법을 이해하고,법을 행하고,법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그래서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가벼워지게 하기 위해서이다.고통이나 행복이 있으려면 자아가 있어야 하고 '나'와 '나의 것'이 있으려면 현상이 있어야 한다(그렇다,바로 이것을 말함이다.현상이란 진리로 보면 존재하지 않는,아니 존재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의 파동으로 존재할 따름이다.작용만 있는 흐름.설혹 경험의 입자가 만들어지더라도 그것은 작용의 표현을 위한 현상일 뿐 순수의 파동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욕심없는 아기의 표정같은것이다.지금 어느 시장거리에 서서 보라.탐진치로 채색된 저잣거리가 어느 한 순간 변화된 모습으로 보이는걸 경험하게 되면 당신은 비로소 비밀을 깨달은 것이다.가족끼리 주인과 손님이 되어 흥정을 하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고 도움을 주려는 믿을 수 없는 기적같은 일이 바로 지금 당신의 눈 앞에서 펼쳐진 것이다.무한한 가능성의 파동은 빛으로 넘치고 모두의 얼굴에는 밝음만 보인다.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경험의 입자는 밝음 뿐이다.바로 이것이 붓다가 그리는 중도의 세계이다.내가 중도가 되고 나의 중도가 경찰관의 중도를 낳고 다시 경찰관의 중도가 김말임을 중도로 만든다,0이러한 집착이 발생하는 순간 마음이 곧바로 초월로 향하면 현상은 모두 사라진다.기쁨도,미움도,집착도 사라진다.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았을 때처럼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법 수행을 개발하고,법에 도달하고,법을 깨닫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바로 그 순간,그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모든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우리는 자유로워진다.왜 아직도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놓아 버리지 못할까?그 해악을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고,우리의 지식이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붓다나 아라한에 도달한 붓다의 제자들처럼 분명한 깨달음을 얻는다면 누구나 놓아 버릴 수 있고 모든 문제는 저절로 사라진다.귀가 소리를 들으면 그저 제 할 일을 하게 내버려 두라.눈이 형태를 볼 때도 내버려 두고 코가 냄새를 맡아도 내버려 두라.몸에서 감각이 느껴지면 본래의 기능을 하도록 내버려 두라.모든 감각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겠는가?아무 문제도 없다(방구가 나올려면 살짝 힘주고 열어조라 나가도록 변의가 느껴지면 곧바로 내보내도록 길들여라.움켜잡고 있어봐야 변비밖에 더 되나.)마찬가지로 현상에 속한 것은 그저 현상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고 초월을 인식하라.집착이 없는 앎,곧 '아는 자'가 되라.앎과 놓아 버림이 마음의 이치가 되게 하라.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수행해야 한다.마찬가지로 현상에 속한 것은 그저 현상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고 초월을 인식하라.이러한 깨달음이 곧 고통의 초월이다.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물건을 만들고 도구를 사용하고 속세의 다양한 학문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법은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많이 알 필요는 없다.법 수행자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알고 그 다음에는 놓아 버리라.고통을 초월하기 위해 죽을 필요는 없다.모든 문제의 해법을 안다면 이번 생에서 고통을 초월할 수도 있다.현상을 알면 초월도 아는 것이다.이번 생에서,바로 지금 이곳에서,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라.진리 이외에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南海記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당장 시작하라 (0) | 2009.06.21 |
---|---|
왜 명상을 하는가 (0) | 2009.06.20 |
왜 명상을 하는가 (0) | 2009.06.19 |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전쟁 (0) | 2009.06.19 |
치우치지 않는 마음 (0) | 2009.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