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장난이 심해서,어른들을 화나게 하고 결국 야단을 맞거나 매를 맞는 아이들과 같다.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의 속성임을 이해해야 한다.그래야만 아이들이 마음대로 뛰어 놀게 내버려 둘 수 있다.그렇게 되면 우리의 고통도 끝이 난다.왜 고통이 끝날까?우리가 아이들의 방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우리의 시선이 달라졌고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우리는 놓아 버렸고,마음은 더욱 평화로워진다.우리에게는 바른 견해가 있다.바른 견해가 없으면 깊은 동굴 속에 있어도 혼란스럽고 산꼭대기에 살아도 혼란뿐이다.바른 견해가 있어야만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다.바른 견해가 있으면 풀어야 할 수수께끼도 없고 골칫거리도 없다.바로 그것이다.떨어지라.놓아 버리라.집착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집착에서 떨어지라.마음이 본래 그렇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마음은 우리를 화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음은 본래 그런 것일 뿐이다.생각이 점점 멀리 달아나는 것 역시 마음의 속성이다.놓아 버리면,형태는 형태일 뿐이고,소리는 소리일 뿐이며,향기는 향기,맛은 맛,감촉은 감촉,마음은 마음일 뿐이다.물과 기름처럼 서로 다르다.물과 기름은 한 병에 담아도 성질이 서로 달라 섞이지 않는다.물과 기름이 다르듯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도 다르다.붓다께선 형태,소리,향,맛,감촉과 함께 사셧다.성취한 자,깨달은 자이셨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로부터 돌아서셨다.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고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서서히 그것들로부터 멀어졌다.결코 그것들을 뒤섞지 않았다.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이다.생각이나 감정은 그저 생각이고 감정일 뿐이다.모든 것을 그대로 놓아두라.형태는 형태이게 하고,소리는 소리이게 하라.생각은 그저 생각이게 하라.왜 그런 것들에 집착하는가?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분리와 이탈이 가능하다.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이쪽에 있고 마음은 그 반대편에 있다.물과 기름처럼 같은 병 속에 있어도 별개의 것이다.붓다와 붓다의 제자들은 깨달음이 없는 평범한 자들과 함께 살았을 뿐 아니라 깨달음이 없는 평범한 자들에게 깨달음을 얻는 방법을 가르치셨다.깨달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르칠 수 있었다.그들은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임을 알았다.그러므로 자신의 수행에 대해 결코 의심하지 말라.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한 당신들은 미혹에 빠지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두려움 때문에 온 것도 아니다.스스로를 통달하고 훈련하기 위해 출가했다.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법의 길을 따를 수 있다.법은 점점 선명해질 것이다.법을 이해한 자는 자신을 이해한 자이며,자신을 이해한 자는 곧 법을 이해한 자이다.진정한 법은 어디에나 있다.다른 곳으로 달아날 필요가 없다.달아나려면 지혜로,앎으로,노련함으로 달아나라.무지로 달아나서는 안 된다.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그 평화가 지혜의 평화이게 하라.그것으로 충분하다.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바른 길이 있다.번뇌는 그저 번뇌일 뿐이고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이다.그런것들이 본래 ㅁ습으로 있도록 내버려 두고,거기에서 떨어지고 이탈하면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대상이 된다.바른 길을 걸을 때 우리에겐 죄가 없다.죄가 없는 마음에는 항상 자비와 자유가 있다.붓다께서는 "비구들이여,잘 들어라.너희는 결코 법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법이란 무엇인가?법은 모든 것이며 법이 아닌 것은 없다.사랑과 미움도 법이며,행복과 불행도 법이다.좋아함과 싫어함 도 법이다.아무리 보잘것 없는 것이라고 해도 전부 법이다.법을 행하고 법을 이해한다면,놓아 버릴 수 있다.그리고 어떤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다.마음에서 생성되는 모든 조건,몸에서 생성되는 모든 조건은 항상 변화한다.붓다께서는 그 어떤 조건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고,제자들에게 그 모든 ㅈ건을 버리기 위해 수행하고,어떤 조건을 더 취하기 위해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옳다.옳지만 어렵다.가르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번뇌 때문에 어렵다.가르침을 잘못 이해하면 번뇌가 우리를 가로막고 말썽을 일으킨다.사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다.붓다의 길에대한 집착만으로는 고통이 일어나지 않는다.왜냐하면 그 길은 모든 것을 놓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붓다께선 불교 명상의 궁극적인 수행으로 놓아 버림을 가르치셨다.아무것도 취하지 말고 놓아 버리라.좋은 것을 보아도 놓아 버리고 옳은 것을 보아도 놓아 버리라.놓아 버리라는 것은 수행을 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 아니다.놓아 버림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그는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사유하고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유함으로써 길을 개발하라고 가르치셨다.법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 있다.먼 곳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 있다.수행자라면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마음을 보다 넓고 밝게,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만들라.선을 행하면 마음에 담지 말고 놓아 버리라.악을 삼갔다면 역시 놓아 버리라.붓다는 지금 이 순간,바로 이곳에서 살라고 가르치셨다.과거나 미래 속에서 길을 잃지 말라.가장 이해하기 어렵고,사람들의 견해와 대체로 충돌하는 것이 바로 '놓아 버리라'혹은 '빈 마음으로 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이것은 법의 언어로 표현되었다.이것을 속세의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혼란에 빠질 뿐 아니라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게 된다.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본래 의미는 이렇다.우리는 커다란 바위를 이고 있다.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게가 느껴지지만 바위를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지 몰라 그 무게를 견딜 수 밖에 없다.만약 누군가 그 바위를 던져 버리라고 말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이것을 던져 버리면 나에겐 아무것도 없는 걸요!"그래서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지치고 피로해질 때까지 들고 있다가 떨어뜨린다.바위를 떨어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놓아 버림의 이로움을 실감한다.바로 기분이 좋아지고 가벼워진다.바위를 들고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바위를 내려놓기 전에는 놓아 버림의 이로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마찬가지로 누군가 놓아 버리라고 말을 해도 깨닫지 못한 자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너무 무거워서 손을 놓아 버릴 수 밖에 없을 때까지 바위를 꼭 붙들고 있다.바위를 놓치고 나서야 비로소 가벼움과 안도감을 느끼면서 놓아 버림의 이로움을 깨닫는다.나중에 다시 바위를 들게 되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다면 좀더 쉽게 놓아버릴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깨달음,즉 바위를 들고 다니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는 것,놓아 버림을 통해 편안함과 가벼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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