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이 있으면 법에 가까이 있는 것이고 만물의 무상함을 볼 수 있다.붓다를 보고 윤회의 고통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지금이 아니라면 미래의 어느 때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을 버리면 우리의 수행은 결실을 맺을 수 없다.일을 할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항상 수행해야 한다.눈이 형태를 보고,귀가 소리를 듣고,코가 냄새를 맡고 혀가 맛을 보고,몸이 감각을 느낄 때,어떤 상황에서도 붓다를 버리지 말라,붓다에게서 벗어나지 말라.이것이 붓다와 가까이 있는 자,항상 붓다를 존경하는 자의 모습이다.매일 저녁 우리는 "아라함 삼마 삼붓도 바가와(모든 번뇌를 떠나 스스로 깨달음을 얻으신 세존)"을 염송하면서 붓다께 경의를 표한다.그러나 이것은 심오한 방법이 아니다.팔리 경전을 염송하며 붓다께 경의를 표하는 것은 비구를 '구걸하는 자'로 정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반면 눈이 형태를 보고 ,귀가 소리를 듣고,코가 냄새를 맡고,혀가 맛을 느끼고,몸이 감각을 느끼고,마음이 정신적 감흥을 인지할 때마다 그 속에서 무상,고통,무아를 보는 것은 비구를 '윤회의 위험을 본 자'로 정의하는 것과 같다.이것이 훨신 더 심오하며 많은 것을 넘어선 것이다. 이것이 바른 수행의 길이다.이러한 자세로 수행에 정진하다 보면 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다.스승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도 그들과 가까이 있는 것이다.스승과 가까이 살아도 마음이 스승과 만나지 못하면 스승을 험담하거나 아첨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듣기 좋은 말을 하면 스승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듣기 싫은 말을 하면 형편없다고 생각한다.그런 행동이야말로 수행에서 가장 멀리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