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海記行

몸의길 마음의 길

낡은집에사는남자 2009. 9. 1. 09:15





가끔 제자들에게,"오늘 명상은 어떤가?"하고 물어보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알겠는가?한두 달 정도는 버티지만 일이 년이 지나면 다 끝나 버린다.왜 그럴까? 수행의 핵심을 놓쳤기 때문이다.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결국 자리에 앉자 마자 끝내고 싶어한다.나중에는 아예 앉지도 않는다.불상에 절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처음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공들여 불상에 엎드려 절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옆길로 샌다.결국에는 엎드려 절을 하지 않고 대충 고개만 숙인다.그러다가는 아예 목례도 안 한다.수행을 완전히 내다 버린 것이다.알아차림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멈추지 말고 수행하라.꾸준한 수행이야말로 바른 수행이다.서 있을 때나 걸을 때,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수행은 계속 되어야 한다.수행과 명상은 몸이 아닌 마음에서 이루어진다.당신의 마음속에 정성과 열의가 있다면 그곳에 깨어 있음도 있다.바른 견해가 있을 때 수행이 제대로 이루어지고,바르게 수행하면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오래 앉아 있지 못했어도 상관없다.좌선을 끝낼 때 명상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세만 달라지는 것임을 명심하라.마음은 여전히 평화롭다.서 있을 때나 걸을 때,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 항상 알아차림이 있다.이런 깨어 있음을 지니고 있다면 내면 수행이 유지될 수 있다.저녁이 되어 다시 자리에 앉으면 수행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노력도 깨어지지 않고 마음도 고요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명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 포기한다.그리고 수행할 만큼 덕을 쌓지 못했다고 말한다.사람들은 늘 그런 식으로 번뇌의 편에 선다.무슨 일을 하든 마음이 길을 이탈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내면을 들여다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최고의 수행은 책을 많이 읽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책을 모두 가져다가 벽장에 넣고 잠가 버리라.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읽으라.학교에 입학한 이후 당신은 자신을 책 속에 묻어 버렸다.이제 당신에게 기회와 시간이 주어졌다.책을 벽장에 넣고 잠가 버리라.마음을 읽으라.마음속에서 감흥이 일면 좋아함이든 싫어함이든 선함이든 악함이든 "이건 확실하지 않아."하면서 잘라내라.무엇이든 잘라 버리라."확실하지 않아!"확실하지 않아!"한 자루의 도끼로 모든 것을 잘라 버릴 수 있다."확실하지 않아!"야말로 중요한 수행이다.지혜가 그 속에서 자란다.당신이 "확실하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잘라낸 것들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그러나 그것들은 정말 "확실하지 않은 "것들이다.눈앞에 무엇이 나타나든 이 이름표를 붙이라,태어나던 그날부터,수시로 당신을 농락해 왔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낯익은 친구를 보게 될 것이다.그 욕망을 보고 만물의 본질을 이해하라.그 모든 것들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당신도 느껴 보았을 것이다.멋진 시계를 보고 '참 좋군!'하고 생각한다.시계를 산 다음 어떻게 되는지 보라.며칠이 지나면 벌써 싫증이 난다.참 멋지군!"하고 생각하면서 펜을 하나 산다.몇 달도 안 가서 싫증이 난다.바로 그런 것이다.지속되는 것,믿을 만한 것이 어디 있던가>모든 것을 불확실한 것으로 인식하면 그것들의 그릇된 가치도 사라진다.모든 것이 하찮아진다.아무 가치도 없는 것에 왜 매달리겠는가?발을 닦기 위해 놓아둔 낡은 깔개만큼만 집착하다 모든 감흥은 본질적으로 갈고 따라서 모두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감흥을 이해하는 것이 곧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감홍에 속지 않으면 세상에 속지 않는다.이것을 아는 마음은 탄탄한 지혜를 기반으로 하고 이런 마음에서는 많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적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는다.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의심도 사라지고 대신 평화가 솟아난다.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