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海記行

왜 명상을 하는가

낡은집에사는남자 2009. 6. 19. 14:32




알아차림을 지키면서 마음을 다시 끌어 오도록 노력해야 한다.'끌어 온다'고 하긴 했지만 사실 마음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깨어 있음의 대상이 바뀌는 것뿐이다.마음이 지금 여기,이 순간에 머물게 해야 한다.알아차림이 있으면 마음도 있는 것이다.마음을 끌어 오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사실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조금 달라진 것뿐이다.다시 알아차림을 되찾는 순간 끌어 올 필요도 없이 곧바로 마음과 함께 있는 것이다.

  완전한 앎,즉,매 순간 지속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깨어 있음이 있을 때,이를 '평정'이라고 부른다.그러나 주의가 호흡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 평정이 깨어진다.호흡의 알아차림이 있으면 그곳에 깨어 있음도 있다.

 알아차림과 스스로 깨어 있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이제 당신은 호흡을 분명을 의식한다.호흡을 관찰하는 훈련은 알아차림과 스스로 깨어 있음을 함께 개발하는데 도움이 된다.그 둘이 일을 나누어야 한다.알아차림과 스스로 깨어 있음이 모두 있는 것은 무거운 나무판을 두 사람이 함께 드는 것과 같다.두 사람이 무거운 나무판을 들어 올렸다고 가정해 보자.너무 무거워서 버티기가 힘들면 또 다른 사람이 기꺼이 그들을 도우려 달려올 것이다.마찬가지로 알아차림과 스스로 깨어 있음이 있으면 지혜가 그들을 도우러 온다.그렇게 그 셋이 서로를 돕는다.

 지혜가 있으면 감각의 대상에 대한 통찰도 있다.예를 들어 명상 중에 친구를 떠올렸다면,지혜는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그만 해.""잊어 버려."라고 말한다.내일 어디를 갈지 생각하다 보면 지혜는 "나는 관심 없어,그런 문제 따윈 신경 쓰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들이 떠오르면 "아니,난 그런 것들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거나,"놓아 버려,""다 불확실한 거야,"라고 말한다.명상 중에 감각의 대상을 만나면 이런 식으로 대처해야 한다."확실한게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깨어 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사고,독백,의심을 모두  버리라.명상 중에 그런 것들에 붙잡히지 말라.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알아차림과 스스로 깨어 있음,지혜 세 가지뿐이다.세 가지가 약해질 때마다 의심이 고개를 든다.그러나 곧바로 그 의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라.오직 알아차림과 스스로 깨어 있음,지혜만 남겨 두라.마음속에 항상 알아차림을 지니게 될 때까지 알아차림을 개발하라.그러면 알아차림과 스스로 깨어 있음,지혜를 모두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주의를 집중하다 보면 알아차림과 스스로 깨어 있음,선정,지혜를 모두 한 번에 볼 수 있게 된다.외부의 감각적 대상에 좋아함이나 싫어함의 감흥이 일 때"이건 확실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어떤 감흥이든 마음이 깨끗해지려면 모두 쓸어내야만 한다.오직 알아차림과 분명한 깨어 있음,선정,완전한 지혜만 남아 있어야 한다.명상 수행에 도움이 되는 또 다른 도구로 선의가 있어야 한다.선의는 자비이며,친절이며,도우려는 마음이다.선의는 청렴함의 바탕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먼저 나눔을 통해 탐욕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하라.이기적인 자들은 행복하지 않다.이기심은 곧 불만족으로 이어진다.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이기심이 생기는 것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특히 배가 고플 때 그렇다.친구에게 마음대로 하나를 고르라고 하고는 '이걸 먹어'하면서 작은 것을 내어 준다.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기심이다.나눔을 실천하려면 본성을 거역해야 한다.작은 사과를 주고 싶어도 큰 것을 주도록 스스로를 강요해야 한다.물론 큰 것을 주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본성을 거역하면서 마음을 훈련하려면 자제력이 필요하다.마음에 이기심이 스며들지 않도록 어떻게 주고 어떻게 포기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어떤 사과를 줄지 망설인다면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문제가  발생한다.결국 큰 것을 준다 해도 내키지 않는 마음이 남아 있는 셈이다.그러나 선뜻 큰 것을 내어 준다면 그것으로 끝이다.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쌩유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게 된다.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결국 자신의 희생양이 되고 이기적인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우리는 모두 이기적으로 살아왔다.이제 번뇌를 잘라 내야 한다.팔리 경전에서는 나눔을 다나라고 한다.다나는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우리 마음의 번뇌를 없애 준다.이 점을 명상하고 수행하라.

 이렇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자신을 박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나눔은 욕망과 번뇌를 박대하는 것이다.번뇌가 있으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번뇌는 떠돌이 고양이와 같다.배불리 먹여 주면 반드시 또 찾아와 더 달라고 보챈다.그러나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얼마 안 가서 발길을 뚝 끊는다.번뇌도 마찬가지이다.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찾아와 괴롭히지 않고 마음을 평화로운 상태로 내버려 둘 것이다.번뇌를 두려워하지 말고 번뇌가 당신을 두려워하게 하라.법을 깨닫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법은 어디에서 오는가?이런 식의 앎과 이해와 함께 온다.누구든 법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책에서 배우거나 오랜 시간의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지금 바로 명상을 시작하라.내가 하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누구에게나 번뇌는 있다.그렇지 않은가?과거에는 번뇌를 배불리 먹여 주었다.ㄱ러나 이제 번뇌의 본질을 알게 된 당신은 번뇌가 당신을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수행의 또 다른 요소로 계율이 있다.계율은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당신의 수행을 지켜보고 보살핀다.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은 물론 그들을 돕고 격려하는 것을 의미한다.최소한 오계는 지켜야 한다.오계는 다음과 같다.

  사람을 죽이거나 고의적으로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나아가서 모든 존재에 선의를 전파하라.

   정직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가정은 남편과 아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성향과 욕구,바라는 바를 알아야 하며 절

       제를 알고 성적 행위의 경계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그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남편이나 아내를 갖는 것

        만으로 부족해서 두 번째나 세 번째 배우자를 둔다.한 사람으로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배우자를 두셋씩 두는 것은 쾌락에

       탐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마음을 깨끗이 하고 훈련하여 중도를 알아야 한다.중도를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청렴함이

       다.그것이 없다면 행동에 아무 제한이 없다.한 명의 배우자로 충분하다.둘이나 셋을 두는 것은 쾌락의 탐닉이며 오직 문제

        를 일으킬 뿐이다.

     거짓말하지 말라.이 역시 번뇌를 뿌리 뽑기 위한 방편이다.항상 정직하고 바르고 진실하고 청렴해야 한다.

     술 마시지 말라.절제를 알고 술은 절대 금해야 한다.사람들은 이미 가족과 친지,친구들,물질,부와 같은 것들에 흠뻑 취해

         있다.술을 마심으로써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이러한 것들은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술을 많이 마시던 사람은

         서서히 줄이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끊어야 한다.사리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일상생활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것은 무엇인

         가?그러한 억압의 원인이 되는 행동은 무엇인가?좋은 행동은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행동은 나쁜 결과를 낳는다.술을 마

         시는 행위도 원인이 된다.계율이 확고해지면 정직함과 타인에 대한 자비심이 생겨난다.또한 모든 근심과 가책을 떨쳐 낸

          만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가책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는 일종의 행복,천상의 행복이다.우리는 계율에서 솟아난 행

          복과 편안함 속에서 먹고 잔다.선이 생겨나도록 악을 삼가는 것.이것이야말로 법 수행의 기본이다.이런 식으로 계율을 기른다면 악은 사라지고 선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울 것이다.그러나 수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그러한 행복에 도달하게 되면 사람들은 방심하여 더 이상 수행에 정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행복에 갇히는 셈이다.졸려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천상의 행복이 더 달콤하기 때문이다.그러나 행복은 안락하긴 하지만 진정한 깨달음은 아니다.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명상을 계속하라.행복의 해로움에 대해 명상하라.행복은 덧없으며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머지않아 행복과 헤어져야 한다.행복은 확실하지 않다.일단 행복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고통이 생겨나고 다시 눈물이 돌아온다.행복마저 결국에는 눈물과 고통으로 끝난다.붓다께선 우리에게 행복의 고통스러운 측면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대체로 이런 행복 속에는 진정한 깨달음이 없게 마련이다.확고하고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가 가짜 행복에 가려지는 셈이다.이러한 행복은 우리가 집착하는 번뇌의 조금 다듬어진 모습일 뿐이다.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행복은 좋아하는 감정에서 비롯된다.그러나 좋아함이 싫어함으로 변하는 순간 고통이 생겨난다.헉따라서 우리는 행복을 깊이 명상함으로써 그 불확실함과 한계를 보아야 한다.상황이 바뀌면 고통이 발생한다.고통 역시 불확실한 것이므로 절대적인 것,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이런 식의 명상을 현상계의 불완전함과 한계에 대한 명상이라고 부른다.이것은 행복을 그 겉모습만 보고 받아들이지 않고 깊이 사유하는 것을 의미한다.행복을 자세히 관찰한 뒤 그 이로움과 해로움을 모두 본 다음 놓아 버리라.세상의 모든 것이 불완전함을 깨닫게 되는 것을 '버림의 명상'이라고 한다.이때 마음은 미몽에서 깨어나 탈출구를 찾는다.이러한 깨어남은 형태와 맛,사랑과 미움의 실체를 본 데서 비롯된다.미몽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그 어떤 것에도 집착이나 욕망이 없음을 의미한다.꺼져초연함으로 편안히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까지 서서히 집착이 사라진다.이것이 바로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평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