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
붓다께선 수행과 가르침에서 모범을 보이셨고,수행이 교만을 없애는 훌륭한 방편이라고 하셨다.그러나 우리를 대신해서 수행을 해줄 수는 없다고 하셨다.그 가르침을 받들어 우리는 스스로를 가르치고 스스로 수행해야 한다.수행의 결실은 가르침 자체가 아닌 우리 마음속에서 맺어지기 때문이다.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법에 대한 기초 지식을 얻을 수는 있지만 아직 우리 마음속에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왜 그럴까?아직 수행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법은 수행 속에서 일어나고 수행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법을 의심하는 것은 곧 수행을 의심하는 것이다.선사들의 가르침은 진리이긴 하지만 그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다.법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 가르침을 우리 마음에 심어야 한다.몸에 관한 것은 몸에 새기고,말에 관한 것은 말에 새기고,마음에 관한 것은 마음에 새겨야 한다.법문을 들은 뒤 법을 깨닫기 위해 스스로를 가르치고 스스로 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붓다께선 다른 사람의 말을 무조건 믿는 사람은 지혜롭지 않다고 하셨다.지혜로운 자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법과 하나가 되고 자신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갖게 될 때까지 수행한다고 하셨다.믿음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법을 따르는 믿음이 있고 법과 대치되는 믿음이 있다.법과 대치되는 믿음은 경솔하고 무모한 깨달음이며 '그릇된 견해'이다."저의 견해는 옳지 않았습니다."붓다의 대답을 듣는 순간 바라문은 자신의 그릇된 견해를 버리고 곧바로 진리를 보았다.바로 그 순간,그 자리에서 그는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 생각을 바꾸었다.그는 붓다의 가르침을 칭송하며 이렇게 말했다."축복 받은 자의 가르침을 듣고 나니 마음이 환해졌다.마치 어둠속에서 살다가 빛을 본 것과도 같구나,나의 마음은 뒤집혔다가 바로 놓인 대야와 같고 길을 잃었다가 찾은 사람과 같다."뒤집혀 있던 그의 마음속에 깨달음이 일어난 순간이었다.그릇된 견해는 사라지고 바른 견해가 들어섰다.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생겨난 것이다.붓다는 디가나카가 '법에 눈 뜬 자'라고 하셨다.디가나카는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면서 바꾸려하지 않았다.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그의 마음은 진리를 보았다.견해에 대한 자신의 집착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우리도 그렇게 변해야 한다.번뇌를 떨쳐 버리기 전에 먼저 그릇된 견해를 버려야 한다.그릇된 견해를 버리지 않으면 수행을 재대로 하고 있는 것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그러나 진리를 제대로 보게 되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마음을 뒤집게 된다.마음속에서 붓도,아는 자,지헤가 떠올라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된다.본래 '아는 자'는 없었다.우리의 앎은 불확실하고 ,진리가 아니며,불완전했다.이 앎은 마음을 훈련하기에는 너무 약하다.그러나 깨어 있음으로 마음이 변하고 뒤집혀 지헤와 통찰력이 생겨나면 이전의 깨어 있음을 초월하게 된다.그래서 붓다께선 우리에게 "안을 들여다 보라"고 하셨다.밖을 보지 말라고 하셨다.만약 밖을 보았거든 그 다음에 안을 보고,안에서 원인과 결과를 보라고 하셨다.세상 만물에서 진리를 보라고 하셨다.외적인 대상과 내적인 대상은 항상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우리의 수행은 '깨어 있음'을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다.이 깨어 있음이 지헤와 통찰의 원인이 되고,마음의 이치를 알게 하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방볖을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