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침8-제 2 장 암굴(暗窟)의 프로메테우스
산정(山頂)의 거인,그대 있어야할 그 장소에서......
이제 그대는 암굴의 프로메테우스,
전갈문신(全蝎文身)의 마법사여,그대가 외는 밤마다의 다라니주는 우리의 잠든 연수(延髓)에 針으로 꽂히고 ..... .
나는 선실(船室)문을 당겼다.채광이 잘 된 선실내부에는 서너명의 승객뿐이었다.그들은 비닐장판이 깔린 바닥에 드러눕거나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아마 그들은 서로 낯선 사람들인 모양이다.나는 낮은 천정을 의식하며 허리를 굽히고 앉을 자리를 눈길로 찾았다.실내 입구의 신발장에 구두를 벗어 놓은 뒤 나는 등을 벽에 붙인채 한 쪽 구석에 앉았다.그리고는 소지품이 든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양 무릎을 쭉 뻗어보았다.나의 습성화 해버린 강박관념,가슴이건 등이건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은폐시켜야만 안도감과 자유를 확인하는 이 어설픈 습성.
그랬었다,그럴 수 밖에 없었다.지하실에서,천정에 부착된 활차(滑車)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갈고리에 꿰인 나의 정육(精肉)이 허공을 오르내릴 때에도 .
그러한 고문(拷問)에 만신창이가 된 나는 출감후 술을 마시고 또 마시고,취할 때까지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취되어 가는 나의 의식을 스스로 위로하였다.너는 살아야해!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개가되었다는 그 기억을 수치로만 알아서는 안돼,그리고 잊지 말것은 ,잊어버리고 싶은 그 기억을 잊지말 것.객담(喀痰)에 섞여 나오는 폐의 시뻘건 살점을 보면서 아직도 나 자신 속에 여전히 꿈틀거리는 유충(幼蟲)의 형상을 떠올릴 것.그 유충의 변화를 주시할 것.
선실창 너머로 바다는 회색빛이다.수평선이 조금씩 흔들린다.섬은 보이지 않는다.나는 선실을 둘러보았다.비좁은 선실안은 침묵으로 차 있었다.방한외투에 몸을 감싸고 자는듯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남자,주간지를 보고있는 젊은 여자와 이따금 하품을 깨물며 안경너머로 주위를 살피는 40대 초반의 여자,선실벽에 붙은 수배자의 전단을 살피는 점프차림의 남자,저편 구석에 등을 보이고 누워있는 늙은이.
나는 가방을 열고 그 속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갈색의 표지에 금박의 제목으로 된 (세계시선집)이었다.손 가는데로 책장을 넘겼다.r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나,조석간만의 차이처럼 나도 변해가고 모든게 변한다,복잡한 일상속에 모든 아는 것들이 사라지고 연탄집게 든지 십년이 넘는 지금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