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이치를 따르라
공부를 많이 해서 이론적으로 해박한 사람들은 대체로 수행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그저 법에 대한 정보를 아는 수준에 머물 뿐이다.사실 마음은 외적인 기준들로 측정될 수 없다.마음이 평화로워지면 그저 평화로운 상태로 내버려 두라.그러면 가장 심오한 수준의 평정에도 이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수행의 이론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수행을 시작하고 삼 년쯤 지났을 때 선정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명상을 하는 중에도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이 어떤 단계인지 알아내려 했지만,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생각도 많아졌고 수행을 하지 않았을 때 차라리 더 평화로웠다.수행이 너무 힘들고 화도 났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그리고 계속 그렇게 했다.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을 때가 차라리 마음 편했다.선정에 들겠다고 결심한 순간 곧바로 마음이 통제에서 벗어났다.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된거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하고 생각했다.나중에야 명상이 호흡과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호흡을 얕거나 깊게,혹은 적당하게 유지하겠다고 결심하면 무척 어려워진다.그러나 산책을 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는 것 자체를 의식하지 못할 때 호흡은 아주 편안해진다.나는 '아하!바로 그것였군!'하고 생각했다.하루 일과를 하면서 호흡에 집중하지 않을 때 호흡이 고통을 일으키는가?그렇지 않다.그저 편안하다.마찬가지로 앉아서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겠다고 결심을 하면 그 순간 집착이 생겨난다.호흡을 얕거나 깊게 통제하려고 하면 전보다 불편해진다.왜일까? 그런 의지는 집착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당시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분노와 시련만 있었다.집착을 명상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참 이상했다.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더니 마음이 고요해지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듣고 싶으면 들을 수 있었다.그러나 소리가 방해가 되지 않았다.마치 마음속에 두 개의 전혀 다른 대상이,서로 전혀 닿지 않고 나란히 놓여 있는 것 같았다.타구와 물주전자처럼 마음과 마음이 인식하는 대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그제야 나는 깨달았다.마음이 선정에 들면,주의를 밖으로 모으면 소리가 들리지만 마음의 공 속에 머무르면 완전한 고요뿐이었다.소리를 인식했을 때,나의 앎과 그 소리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이것이 마음의 본래 모습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그것이 본래의 모습이었다.그 둘은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나는 계속 그런 식으로 계속 파고들었고 깨달음은 더욱 깊어졌다.'아!정말 중요한 걸 깨달았군,현상을 인식할 때 그 연관성을 차단하면 평화를 얻을 수 있어!"그 두 가지의 연관성에 대한 기존의 환상은 마음의 평화로 전환되었다.그 순간의 마음은 오직 명상에만 집중되었고 다른 모든 것들에 초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