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를 개발하듯 마음도 개발하라
붓다께선 마음의 눈으로 몸 안의 몸을 보라고 가르치셨다.몸 안을 들여다보면 정말 징그럽다.오늘의 것과 어제의 것이 그 속에 뒤섞여 있다.뭐가 뭔지 분간도 안 간다.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이 육체의 눈,오직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미친 눈으로 보는 것보다 휠씬 정확하다.마음의 눈,지혜의 눈으로 사유해야 한다.이것이 오온에 대한 집착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수행이다.집착을 뿌리 뽑는 것이 곧 고통을 뿌리 뽑는 것이다.오온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이다.오온 자체는 고통이 아니다.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이 고통이다.명상 수행을 통해 이러한 것들의 진리를 분명히 깨닫게 되면 고통은 마치 나사못처럼 서서히 풀려 빠져나간다.나사못을 돌리면 빠지면 것처럼 마음을 돌리고 놓아버리면 선과 악,재산,칭찬,지위,행복과 고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나사못을 조이는 것과 같다.못은 점점 자신을 짓누르고 모든 것으로부터 고통을 느끼게 만든다.이러한 것들을 아는 것은 나사를 푸는 것이다.이것을 초연함이라고 부른다.모든 것에 싫증이 나서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이런 식으로 마음의 나사를 풀다 보면 평화를 얻을 것이다.인간에겐 오직 한 가지 문제가 있을 뿐인데 그것이 바로 집착이다.집착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를 죽인다.개인적인 문제이든 ,가족의 문제이든 ,사회적인 문제이든 모든 문제는 한 가지 뿌리에서 나온다.승자는 없다.서로를 죽여도 결국 그 누구도,아무것도 얻지 못한다.얻는 것,잃는 것,칭찬,비난,지위의 획득이나 박탈,행복과 불행,이것이 속세의 법이다.이러한 법이 속세의 모든 존재들을 집어 삼킨다.집착은 대단한 말썽꾼으로 집착의 본질을 사유하지 않으면 고통을 겪는다.사람들은 부와 지위,권력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왜 그럴까?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어떤 자리에 오르면 권력에 눈이 먼다.마을 지도자가 된 사람은 권력에 취한다.엣 친구가 찾아와도 "너무 자주 오지 말게,이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니까."라고 말한다.붓다께선 재산,지위,칭찬,행복의 본질을 이해하라고 가르치셨다.그것들이 오면 인식하되 그대로 내버려 두고 취하지 말라.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권력,자식,친지,모든 것에 속는다.그러나 분명히 이해하면 그 모든 것이 무상한 조건임을 깨닫는다.집착하면 번뇌에 휩싸인다.처음 인간이 태어나면 오직 나마(정신)와 루파(육체)만 있다.우리는 인습에 따라 그들에게 이름을 붙인다.다음에는 박사나 대령 같은 호칭이 붙는다.이런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것을 진짜라고 생각하고,지니고 다닌다.재산이나 지위,이름과 서열을 지니고 다닌다.권력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이 사람을 잡아서 처형해! 이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처넣어!'계급이 권력을 부여한다.'계급'이라는 단어야말로 바로 집착이 시작되는 곳이다.어떤 게급에 오르면 사람들은 명령을 내리기 시작한다.옳든 그르든 자신들의 기분에 따라 행동한다.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바른 길에서 점점 멀어진다.법을 이해한 자는 절대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재산이나 지위가 주어지면 그저 재산이나 지위로 내버려 두라.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게 하지 말라.의무에 필요할 때 사용하고 그대로 내버려 두라,변하지 말라.
붓다께선 우리가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하셨다.무엇을 얻었든 마음이 거기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는다.사람들이 자신을 시의원으로 지명했다면 ,'좋아,나는 시 의원이야,그러나 사실은 시 의원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라.위원회의 장으로 선출되었다면 '내가 위원장이군,그러나 나는 위원장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라.무엇이 되었든,'그래,나는 무엇이 되었어,하지만 나는 무엇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라.우리는 결국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이다.무엇이 되었든 결국에는 다 똑같다.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확고한 믿음과 진정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이것이 세상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무엇이 와도 모든 것은 그저 조건일 뿐이다.그 무엇이 와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무언가를 지어내고,증식시키고,탐욕과 분노,어리석음에 빠져 들게 하지 않는다.
이런 수행자야말로 진정한 불교의 후원자이다.당신이 보시를 받는 출가자이든 보시를 하는 재가자이든 이 점을 잘 생각해 보라.마음속에서 계율을 개발하라.이것이 불교를 후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음식과 옷,거처,의약품으로 후원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한 보시는 불교라는 나무의 껍질에 닿는 것일 뿐이다.나무에는 껍질과 변재(껍질 바로 밑의 연한 목재),심재(중심에 있는 단단한 부분)가 있다.세 부분은 따로 뗄 수 없다.심재는 변재와 껍질에 닿아 있고,변재는 껍질과 심재에 닿아 있다.마찬가지로 계율과 선정,지혜도 서로 의존하고 있다.계율은 우리의 언행을 청렴하게 지켜준다.선정은 마음을 흔들림 없이 고정시켜 준다.지혜는 모든 조건들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게 한다.이 세 가지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심오한 방법으로 불교를 이해하는 것이다.이를 깨닫지 못하면 재산과 지위,그 밖에 접촉하는 모든 것들에 현혹된다.우리는 명상을 통해 삶이 세 가지 가르침과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전체의 일부임을 기억하라.우리는 그들과 같고 그들은 우리와 같다.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행복과 고통이 있다.누구나 똑같이 이렇게 명상한다면 평화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